코로나19 전염병이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가운데, 대한민국 방역당국과 주류언론들은 한국교회에 전염병 유행의 책임을 전가하며 이를 빌미로 교회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 한국교회를 향해 쏟아지는 언론과 여론의 비난이 과도하다는 주장에 대한 근거는 질병관리청의 공식 통계와 국민 여론 간의 현저한 괴리에서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2021년 1월 '목회데이터연구소'에서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들은 교회발 감염 비율이 전체 감염의 44% 정도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질병관리청의 공식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20년 한 해 동안 (개신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시설발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전체의 6.8%에 불과하다. 전염병의 특성상 전국 모든 교회의 공예배를 완전하게 폐쇄하고 모든 교제를 완전하게 틀어막지 않는 이상, 교회발 확진자가 0명일 수는 없다. 하지만 개신교인이 대한민국 인구의 20%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한국교회는 오히려 전반적으로 코로나19 방역에 잘 협조해왔다는 것이 명백한 사실이다. 한국교회가 당하고 있는 마녀사냥은 가히 21세기의 '한국교회핍박'이라 부를 만하다. 그러나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핍박받는 것은 오늘날만의 일은 아니다. 예수님은 "내가
찰스 콜슨, <그리스도인,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 그리스도인의 기독교 세계관 필독서라 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찰스 콜슨, 요단출판사)>에 대한 첫인상은 두 가지였다. 먼저는 ‘꼭 한번 읽고 싶다’는 것이었고, 둘째는 ‘책이 참 두껍다’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읽을 책 리스트에만 들어있던 ‘찰스 콜슨(Charles Colson)’의 위대한 저작을 읽을 기회가 생겼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청년들의 금식기도 네트워크인 ‘그리스도의계절’ 안에 새롭게 생긴 문화진지(platform) 분과인 ‘켈라(Kella, 물매)’에서 첫 번째 기독교 세계관 온라인 북스터디로 이 책을 선정했기 때문이다. 두려움과 설렘으로 시작한 이 온라인 북스터디는 총 열 명으로 구성되어 매주 1회 열띤 발제와 자유토론을 이어가고 있다. 정일권, <문화막시즘의 황혼> 특별히 지난 몇 주간 생명의 기원 이슈를 비롯하여 기독교의 절대 진리성을 부인하는 여러 담론에 대해 함께 읽고 토론한 뒤 '문화막시즘(Cultural Marxism)’에 대한 보충학습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래서 그룹 스터디와 별개로 두 권의 책을 보충 서적으로 정
빈자의 곁을 지키는 경제학의 '테레사 수녀' 현재 하버드 대학 교수인 센(Amartya Sen; 1933~)은 빈곤경제학을 개발한 인물이다. 그런 공로를 인정받아서 1998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다. 경제적으로 풍족한 가정에서 자라난 그가 하필이면 빈곤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겠다고 다짐한 계기는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 나이에 겪었던 두 가지 아주 참혹한 사건에 대한 생생한 기억 때문이다. 하나는 무슬림 출신 노동자의 애달픈 죽음이다. 힌두교 지역에서 일자리를 찾다가 힌두교도의 칼에 찔려 우연히 센의 집으로 피신했지만 숨을 거두는 애처로운 모습을 지켜봤다. 다른 하나는 벵갈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굶어서 힘없이 쓰러져 죽어가는 처참한 광경이었다. 이는 1943년 기근으로 무려 300만 명의 생명을 앗아간 대참사였다. 이런 뼈저린 경험으로 가난에 대한 동정심이 그의 마음속 깊이 각인되어 있었다. 센은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박사학위 취득과 함께 본격적으로 빈곤문제 해결에 집중했다. '빈곤경제학'이라는 신천지를 선구적으로 개척했다. 이것이 그가 노벨경제학상이라는 영광을 얻은 배경이다. 일생동안 어려운 사람들 곁에서 이들을 돌봤던 테레사 수녀처럼 센도…
어느 한 정권의 특징은 이념으로 표현된다. 사람들은 문재인 정권을 파시즘, 사회주의 또는 국가사회주의라고도 말한다. 이들 가운데 주목할 것은 파시즘이다. 파시즘은 좌파가 현재의 정치경제에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지칭할 때 사용하기도 했다. 현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극단적인 좌익의 욕으로 이용된다. 그러나 파시즘의 원천은 자본주의가 아닌 사회주의다. 파시즘은 나름대로 독자적인 뜻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파시즘은 혐오스런 역사적 사례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사용하기보다는 그 독자적인 뜻에 비추어 역사적 사건들을 분석하는 의미로 그 개념을 사용할 수 있다. 파시즘의 핵심은 국가주의다. 개인의 권리보다 국익을 절대적으로 우선시하는 게 파시즘이다. 파시즘도 나치즘처럼 사회주의 성향의 필연적인 결과다. 파시즘은 그런 성향에 대한 반대에서 나온 게 결코 아니다. 집단주의 체제들 가운데 유일하게 파시즘만이 사유재산의 존재를 인정한다. 파시즘은 사유재산을 갖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희망을 인정하고 이윤동기의 강함을 예찬한다. 그러나 파시즘에서 사적 소유란 단순히 명목적일 뿐 처분할 자유와 용도개발과 용도선택의 자유가 법적으로 대폭 제한되고 용도의 이용에서 생겨나는 이익을 가질 자유
누구나 이자를 말한다. 왜 이자가 생겨날까? 이자가 착취의 산물인가? 금융을 이용하는 대가인가? 경제학계의 일각의 주장처럼 저축이 투자보다 너무 많기 때문에 등장하는 현상이라는 마이너스 금리가 도대체 있을 수 있는가? 경제사상사를 보면 이런 문제가 경제학의 초미의 이슈였다. 이자현상을 가장 설득력이 있고 체계적으로 설명한 인물이 오스트리아 출신 정치경제학자 오이겐 뵘바베르크(Eugen von Böhm-Bawerk: 1851~1914)다. 그가 이자현상을 중심으로 자본론을 개발했던 시대적 배경은 마르크스의 사상이 대중 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한 시기였다. 그 사상은 이윤과 이자의 존재를 부정하는 등 자본주의는 착취로 점철된 부정한 사회라는 논리였다. 마이너스 이자는 존재할 수 없다 아버지가 고위 공무원이었던 가정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뵘바베르크는 원래 법학을 전공했지만 그의 스승의 말을 듣고는 법학을 접고 독학으로 경제학에 입문했다. 그의 탁월한 업적은 이자란 시간선호 때문에 생겨나는 현상이라는 발견이었다. 시간선호란 인간들이 동일한 품질의 자동차라고 해도 장래에 갖게 될 자동차보다 지금 갖는 자동차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 것처럼 현재재화를 미래재화보다 높이 평가
* 차세대미래전략연구원 장태평 원장의 기고문입니다. 장태평 원장은 서울대 사회학과, 행정대학원 석사 및 미국 오리건대 경제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한국마사회 회장, 사단법인 한글플래닛 이사장, 재단법인 더푸른미래재단 이사장, 강남대학교 석좌교수, 사단법인 선진사회만들기연대 공동대표를 역임하였습니다. 갑자기 부자가 된 사람들은 교양이나 예의가 부족해 부끄러운 행동을 많이 한다. 이런 부자를 졸부라 한다. 졸부들은 무례하고, 상식에서 벗어난 돌출 행동을 자주 한다. 사치와 허영으로 치장하지만, 품격은 느껴지지 않는다. 아직도 개인적 욕심이 과도하고, 정직·겸손·배려·자기희생이란 도덕률은 천만의 말씀이다. 사회에는 금도가 있고, 규범이 있다. 졸부는 이런 사회적 규범과 금도를 범하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지금 집권세력의 많은 일탈 행태를 보면서, 이런 졸부 근성을 떠올리게 된다. 조국 전 장관의 부인이 아들과 딸의 대학입학시험에 가짜 상장과 인턴증명서 등을 사용하였다. 재판 과정에서 관련 증거와 증인들을 통해 가짜라는 사실이 밝혀졌는데도 계속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재판부가 판결하면서 피고가 “법정에서 증언을 통해 진실을…
누구에게나 기회를 균등하게 주어야 한다는 요구는 원래 누구든 공무원에 임명될 수 있는 기회 또는 국가시설을 이용할 기회를 똑같이 부여해야 한다는 고전적 자유주의의 정치적 요구였다. 그런 기회는 사실상 귀족 계급이 독점하고 있었고 오로지 귀족 계급의 자녀에게만 세습되었다. 평민이나 하인에게는 넘볼 수 없는 게 벼슬길이었다. 양반과 상민 구분 없이 누구나 능력이 있으면 벼슬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자유주의가 요구했던 것은 출발선을 똑같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유감스럽게도 그 개념은 국가영역을 넘어서 사적 사회로까지 확대·적용되면서 원래의 기회균등을 왜곡하기 시작하여 오늘날에는 개인의 출발선을 똑같게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 의미의 기회균등은 자유로운 시장질서에 호감을 지닌 보수파뿐만 아니라 칼 포퍼, 존 롤스, 로널드 드워킨 등 반(反) 시장적 철학자들로부터도 갈채와 지지를 받고 있다. 사회주의 프레임에 걸린 보수파는 결과 평등은 실현 가능한 목표가 될 수 없다는 이유에서, 반(反) 시장론자들은 개인의 자유는 기회의 불평등을 야기한다는 이유에서 기회의 평등을 주장한다. 한국…
“ 두 종류의 사람만이 있다 하나는 자기를 죄인으로 믿는 의인들, 다른 하나는 자기를 의인으로 믿는 죄인들 <팡세>, 파스칼 ” 더워드뉴스 THE WORD NEWS
원전 선진국의 탈원전 기조 대한민국은 원전 선진국이다. 2020년 11월 30일 기준 전 세계 국가별 운전 중인 원전운영현황을 보면 미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일본에 이어 6위이며 그 뒤를 인도, 캐나다, 영국, 우크라이나, 벨기에, 스웨덴, 스페인, 독일 등이 뒤따르고 있다. 순위에 걸맞게 원전수출 진행상황도 훌륭하다. 2020년 8월부로 가동을 시작한 아랍에미리트의 바라카 1호기가 포함된 바라카 원전 4개호기를 2009년 세계적인 원전 선진국인 미국, 프랑스, 일본을 제치고 수주하였다. 국내 최초 원전 수출 기록이었으며, 세계에서 원전을 수출하는 6번째 국가가 된 동시에, 원전 4개호기를 수출한 것은 세계 최초였다. 또한 2020년 7월 기준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은 체코, 루마니아, 이집트에 원전 수출 및 원전 사업 참여를 추진 중에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한국원전의 수출실적 기대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일이 발생했다. 그래서인지, 2030년까지 원전 2기를 건설할 예정이었던 사우디는 2017년, 입찰에 참여했던 한국, 미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를 예비사업자로 선정했었으나 현재는 미국이 유력한 것으로 보인다. 경북 경주시에 위치한 원자력발전소
여권에서 토지공개념을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개헌까지 언급했다. "토지공개념을 빠르게 정착시켜 부동산이나 투기 개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하면서 19세기 말 토지공개념으로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었던 헨리 조지(Henry George: 1839-1897)를 소환한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겸 정치경제학자였던 그는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모순을 토지세로 해결하겠다고 나섰던 인물이다. 어린 나이에 학업을 중단하고 선원 생활, 식자공, 인쇄업 등을 전전하며 혼자 경제학을 배운 조지가 신문기자가 되어 현장 취재 때마다 늘 만난 것은, 으리으리한 건물 숲 뒷골목에 늘어선 흉물스런 집들과 부자동네 바로 뒤에 예외 없이 존재한 '달동네' 등이었다. 풍요와 함께 빈곤이 공존하는 현상, 도대체 그 원인이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예리한 통찰력을 가진 젊은 조지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마침내 그것이 사회철학의 거대담론으로 평생의 주제가 되었다. 성장의 열매를 가로채는 땅 부자 조지의 핵심사상은 인구증가와 기술개발로 경제가 번영해도 노동과 자본이 빈곤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경제발전의 대부분을 토지소유자가 차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분배를 좌우하는 권력을 지주가 장악하고 있다는
재벌규제, 골목상권보호, 대주주 규제, 금융그룹감독, 기업규제는 경제민주화의 논리가 깔려있다. 대기업과 대주주는 규제하고 중소상공인은 보호하는 것을 민주화라고 부른다. 원래 나프탈리가 주장했던 경제민주화는 20세기 초반 독일에서 등장한 것인데 그 뿌리는 사회주의다. 당시 경제민주화를 주장했던 배경은 국가를 통해서 사회주의가 가능하다는 믿음에서 생겨났던 국가사회주의였다. 국가의 경제계획은 엘리트적 독재의 지배를 초래했다. 그런 지배가 저지른 만행에 대한 분개심에서 나온 반사적 행동으로서 도입한 것이 경제민주화다. 경제민주화는 바쿠닌의 무정부적 사회주의와 함께 노동자자주경영, 협동조합의 직접적인 생산수단의 소유와 관리 등으로 특징되는 비국가적(?) 형태의 사회주의의 대표적인 예다. 이는 국가사회주의체제에서의 권위주의적 의사결정이 민주적·집단적 의사결정으로 교체된 경제구조를 말한다. 누구를 위해 무엇을 얼만큼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와 관련된 경제계획에 주민들이 공동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 토지, 기업 등 생산수단은 개인의 소유도, 국가소유도 아닌 집단소유 혹은 사회의 소유다. 그러나 거대한 경제에서 주민들의 합의를 통해서 모든 문제를 계획·결정하는 것은
파이프스는 유명한 저서 《소유와 자유》(한글판 15쪽)에서 소유를 "한 명이나 여러 사람의 소유주가 배타적으로 자산을 이용하고 매매나 다른 방법으로 처분할 수 있는, 공식적으로 정부 당국으로부터 인정받은 권리"로 정의한다. 소유(재산)라는 말에 권리를 붙여 사용하고 있다. 어느 한 사람이 권리가 있으면 반드시 이 권리를 충족시킬 의무를 지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소유(재산)에 권리라는 말을 붙이는 것이 논리적으로 정당한 경우가 있다. 이게 쌍방계약에 의해서 권리가 창출되는 경우다. 예를 들면 A가 1년 후 갚기로 하고 B로부터 이자 10%로 돈 100만원을 빌렸다. 그러면 B는 A에 대하여 이자와 원금을 받을 권리가 있다. 그리고 A는 B에게 빚을 갚을 의무가 있다. 계약이 권리를 창설한다. 1년 후에 B가 받게 될 110만원은 B의 소유(재산)권이다. 1년 후 A가 110만원을 갚았다. 이로써 A와 B 사이에 계약관계 즉 권리-의무관계는 종결된다. B가 받은 110만원은 B의 소유권(재산권)이 아니라 그의 소유(재산)이다. 이제 B에게 그 소유는 자유롭다. 즉 그는 재산을 "이용하고 매매나 다른 방법으로 처분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한마디로 소유는 자
사무엘하 6장 9 - 14절 (개역한글) 9 다윗이 그날에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궤가 어찌 내게로 오리요 하고 10 다윗이 여호와의 궤를 옮겨 다윗 성 자기에게로 메어 가기를 즐겨하지 아니하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 간지라 11 여호와의 궤가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을 있었는데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의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 12 어떤 사람이 다윗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 한지라 다윗이 가서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올라갈 새 13 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가매 다윗이 소와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리고 14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그 때에 다윗이 베 에봇을 입었더라 처음부터 언약궤는 메고 가는 것이었다. 2절을 보자. 2 다윗이 일어나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바알레유다로 가서 거기서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 하니 하나님의 언약궤를 제사장들이 어깨에 메고 왔어야 한다. 그것이 기본이고 원칙이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
독일의 도덕철학자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 ~ 1804)는 경제에 관심이 없는 은둔한 철학자로 알려졌지만 그렇지 않았다. 거의 매주 오후에 친구들을 만났는데 이들은 대부분 사업가, 상인, 은행가였다는 게 역사가들의 증언이다. 그들과의 화제는 주로 경제와 정치였다는 것이다. 그런 대화를 통해 칸트의 경제마인드가 형성되었고 시장이 돌아가는 모습도 알게 되었다. 그는 친구들의 회사에 투자해서 많은 돈도 벌었고 유산으로 상당한 재산도 남겼다. 칸트는 영국의 유명한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 데이비드 흄 등 스코틀랜드 계몽 철학자들의 문헌을 두루 섭렵하여 기업과 시장에 박식했고 실제로 그는 대학에서 경제학적 주제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애덤 스미스는 시장경제를 법학적으로 정당화했다면, 칸트는 윤리에서 자본주의의 정당성을 찾았다. 그의 윤리학의 핵심주제는 정언명령이다. 자본주의의 윤리는 정언명령 아버지가 말안장 수리공인 가정에서 자라난 칸트의 도덕철학적 출발점은 세상이 돌아가는 법칙은 선험적인 정신의 산물이라는 ‘합리주의 인식론’이다. 그는 이런 인식론을 도덕철학에도 적용하여, 어느 한 행동이 도덕적으로 옳은가 그른가를 판단하는 도덕적 기준도 이미…
사무엘하 6장 4 - 8절 (개역한글) 4 그들이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하나님의 궤를 싣고 나올 때에 아효는 궤 앞에서 가고 5 다윗과 이스라엘 온 족속은 잣나무로 만든 여러 가지 악기와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양금과 제금으로 여호와 앞에서 연주하더라 6 그들이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7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그를 그 곳에서 치시니 그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8 여호와께서 웃사를 치시므로 다윗이 분하여 그 곳을 베레스웃사라 부르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이르니라 날뛰는 소로 인해 웃사가 죽다. 다윗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가져오기 위해 삼만 명을 선별했다. 산 위에 있던 아비나답의 집에서 언약궤를 가져오려고 다윗과 이스라엘 온 족속은 잣나무로 만든 각종 악기를 사용하여 여호와 앞에서 연주하였고,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는 소가 끄는 새 수레를 몰았다.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사건이 일어났다. 예루살렘 가까운 동네의 나곤의 타작 마당에서 소가 날뛴 것이다. 거의 다 왔는데 말이다. 웃사
사무엘하 6장 1 - 8절 (개역한글) 1 다윗이 이스라엘에서 뽑은 무리 삼만 명을 다시 모으고 2 다윗이 일어나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바알레유다로 가서 거기서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 하니 그 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라 3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그 새 수레를 모니라 4 그들이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하나님의 궤를 싣고 나올 때에 아효는 궤 앞에서 가고 5 다윗과 이스라엘 온 족속은 잣나무로 만든 여러 가지 악기와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양금과 제금으로 여호와 앞에서 연주하더라 6 그들이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7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그를 그 곳에서 치시니 그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8 여호와께서 웃사를 치시므로 다윗이 분하여 그 곳을 베레스웃사라 부르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이르니라 다윗은 헤브론에서 왕이 된 후 블레셋으로부터 시온산성을 빼앗았으며,
자유는 모든 가능한 행동을 해도 된다는 의미의 방종이 아니다. 자유는 폭력, 강제의 금지, 예의범절, 직업윤리, 종교규칙, 소유존중, 약속이행 등 다양한 규칙들과 결부되어 있다. 보편, 추상적이고 특정한 행동을 금지하는 성격을 가진 행동규칙, 즉 정의의 규칙을 통해서 어느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개인의 ‘자유영역’이 형성된다. 불의(不義)의 행동을 막는 정의규칙의 테두리 내에서 인간들은 자유롭게 재화를 생산, 교환, 소비한다. 따라서 자유란 우리가 자유롭게 수행할 행동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유 대신에 ‘자유권’이라는 용어를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사용한다. 예를 들면 헌법에서 종교, 언론, 출판, 표현의 자유 등을 기본권으로서 자유권으로 다루고 있다. 경영의 자유 대신에 ‘경영권’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노동자의 경영참여제도는 자본가의 경영권을 침해하는 제도라는 이유에서 흔히 사람들은 반대한다. 존 롤스에게 정의로운 사회란 개인들이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평등한 ‘자유권’을 가진 사회다. 주목할 것은 자유라는 말에 권리라는 말을 붙임으로써 야기되는 문제는 무엇인가다. 우리에게 소비하는 행동 또는 신앙을 향유하는 것, 기업이 인사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자유롭
(더워드뉴스(THE WORD NEWS) = 하랑이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