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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국의 말과 사상] (16) 탈가치판단의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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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자유주의자 머레이 라스바드(Murray N. Rothbard)의 유명한 『인간 경제 국가』의 한글판 합본발간에 즈음하여 개최한 북 콘서트의 동영상을 최근에 시청한 일이 있었다. 콘서트의 사회자가 합본발간에 책임을 맡았던 교수에게 다양한 문제를 제기했다. 그중 하나가 탈가치판단의 문제였다. 그 교수는 어정쩡하게 답변하여 애청자들은 탈가치판단이 도대체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게 말하고 있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탈가치판단 원칙(Prinzip der Werturteilsfreiheit)에 관한 오해가 매우 컸다. 그 결과 경제학, 정치학, 법학 등 모든 사회과학 분야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그런 오해로 인하여 가장 피해를 보게 된 결과가 계량·미시·거시경제학을 중심으로 오늘날 대학에서 경제학 교육 내용의 주류를 형성한다는 의미에서 주류경제학이다.

 

탈가치판단 원칙은 사회과학이 과학이 될 수 있으려면 학자는 연구분야에 학자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러함에도 연구의 대상으로서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를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오해했다. 그 결과 효율성이라는 경제적인 것 이외의 가치들, 예를 들면 자유, 정의, 평등, 도덕, 에토스, 공화, 공동체 등 중요한 사회적 가치의 분석을 사회과학에서 배제했다. 순전히 계량화가 가능하고 수리적 논리로 전환 가능한 것에 해당하는 명제에 몰두하는 과학주의에 몰두하는 경제학의 존재가 정당화되고 말았다.

 

 

그러나 막스 베버가 비로소 개념화한 탈가치판단의 원칙은 그런 가치들 자체를 분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결코 아니다. 공화 또는 공화주의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이 시장경제에 우호적인 가치인가, 공화 또는 자유 지향적 이념이 오늘날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저성장 실업 빈곤 그리고 사회·정치적 갈등을 해결하는 데 얼마나 공헌할 수 있는가 등의 문제는 탈가치판단의 원칙을 준수하는 과학으로서 사회과학, 좁게 말해서 경제학이 다루어야 할 중요한 문제다.

 

자유의 생성과 내용을 탐구하는 것,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가 서로 어떤 관련이 있는가, 예를 들면 가치들이 충돌하느냐 양립하느냐를 탐구하는 것은 탈가치판단의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분배 평등이 시장경제와 양립하는가, 시장경제의 기초가 되는 도덕률은 무엇이고 이것이 어떻게 생성되고 변동하는가를 연구하는 것도 탈가치판단의 원칙을 벗어난 작업이 결코 아니다.

 

학자가 분석한 결과에 대하여 좋으냐 나쁘냐, 정의로우냐 또는 불의냐를 따지는 것이 가치판단이다. 좋음, 나쁨, 정의 또는 불의 그 자체에 대해서는 과학적 분석이 가능하지 않다. 예를 들면 어느 한 학자가 통계적 방법을 이용하여 한국사회의 소득 분배를 연구한 결과 지니계수가 0.3이라는 분배상황을 확인했다고 하자. 여기까지는 사실판단이다. 그런데 만약 분배상황은 불평등을 의미하고 한국 사회는 그래서 정의롭지 못한 사회라고 말한다면 이는 학자의 주관적 가치에 따라 판단을 내린 것이다. '불평등한 분배는 불의'라는 관점을 반대할 사람은 많다.

 

 

어느 한 다른 학자는 시장경제의 분배를 분석한 결과, 시장경제는 불평등 분배를 불러들이고 그래서 시장경제는 나쁜 체제라고 하는 평가를 내린다면 이것도 탈가치판단의 원칙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런 평가는 과학적 분석이 될 수 없다. 객관성을 추구하는 과학이라면 학자는 자신의 주관적 판단에 지니지 않는 가치평가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가치평가로부터 자유롭다는 말은 탈가치판단을 의미한다.

 

자유를 극대화하는 사회는 다채롭고 풍요로운 재화의 양적 질적 증가를 초래한다고 보자. 그런데 그런 사실판단에서 '그런 증가 속에서 사는 삶이 긍정적인 가치가 있다'라는 결론을 객관적으로 보여주기가 곤란하다. 인도와 기독교의 금욕을 중시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가치를 의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함에도 가치판단을 내릴 경우, 그런 판단을 데이비드 흄은 『인성론』 제1권에서 자연주의적 오류라고 비판했다. 사실명제로부터 결코 규범적 명제를 도출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만약 가치판단을 내릴 경우라면 학자는 자신이 추구하는 주관적 가치를 반드시 명시적으로 밝혀야 한다는 것이 탈가치판단의 원칙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인식이다.

 

 

그런데 사회주의자들은 그런 가치를 숨긴 채 사실과 가치판단을 혼합하여 이론을 개발한다. 막스 베버가 탈가치판단 원칙을 제시한 배경도 당시 사회주의자들의 그런 태도를 비판하기 위한 것이었다. 베버의 비판에 본격적으로 사회주의자들이 반응한 것은 그로부터 60여 년이 지난 1960년대였다. 당시 탈가치판단의 불가능성을 주장한 사회주의 진영의 대표자 유르겐 하버마스와 대결했던 인물은 칼 포퍼의 제자로서 탈가치판단의 원칙을 고수했던 한스 알버트였다. 그 논쟁은 방법론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더워드뉴스(THE WORD NEWS) = 민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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