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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국의 경제철학 향연] (14) "질서를 통한 자유"를 설파했던 발터 오이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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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문제는 경제적 자유가 억압된 탓

 

오이켄(Walter Eucken, 1891~1950)은 아버지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철학 교수였고 어머니가 화가였던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개방적이고 문화와 예술에 관심이 깊은 분위기에서 성장했다. 이것이 그가 장차 교수로서 용기와 책임의식이 강한 인물이 되는 데 영향을 미쳤다. 그가 살았던 시기는 1917년 처참했던 소련의 볼셰비키 혁명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 히틀러의 나치즘 등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한 시기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대학의 지식층은 독재자와 전체주의의 시류에 영합하는 등 도덕적 파산이 만연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조만간 망할 것이 틀림없는 나치 정권 이후에 독일이 지향해야 할 경제질서를 새로이 창안했다. 그 질서는 자유와 번영을 동시에 달성하는 질서, 즉 질서자유주의다. 자유가 없이는 인간의 존엄성도 있을 수 없다. 전체주의의 폭정으로 잃어버린 자유에 대한 독일인들의 갈망을 대변했다. 새로운 경제질서는 경제적으로도 번영이 가능해야 한다.

 

그의 사상에서 흥미로운 것은 시장경제와 정부정책에 대한 비전이다. 그에게 자본주의는 자유와 번영의 원천이다. 자유기업이 없이는 혁신도 없다. 빈곤의 문제는 자유가 없기 때문에 야기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규제를 풀고 경제적 자유를 확립하는 것이 빈곤을 해결하는 지름길이라고 역설했다. 경쟁질서만이 정치적 권력이든 사적 권력이든 권력을 억제하는 불가피한 장치라는 것도 강조했다.

 

 

과정정책 대신에 질서정책을!

 

오이켄은 ‘질서정책’이라는 아주 새로운 정책비전을 제시한다. 그것은 시장참여자들이 자유로이 활동할 수 있는 법적 틀(질서)을 마련하는 정책을 의미한다. 이는 사적소유, 책임, 계약의 자유, 열린 시장, 건전한 통화 등 ‘시장경제 원칙’에 따르는 정책이다. 이런 정책을 통한 법질서가 뒷받침될 때 비로소 시장경제가 자유와 번영을 보장한다. 질서정책과 엄격히 구분되는 ‘과정정책’, 즉 재량적인 정책은 정부가 복지, 투자, 분배, 고용 등과 같이 국가의 특정한 목표를 위해 사안별로 시장과정에 개입하여 자유를 침해하는 간섭이다. 오이켄은 간섭은 빈곤과 실업이라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고 경고했다.

 

흥미로운 것은 오이켄의 역사관이다. 19세기 이래 자본주의는 봉건시대의 억압적인 신분 사회로부터 해방시켜, 개인의 삶을 개선했고 삶의 기회도 확대했다. 그러나 그는 자본주의에는 결함이 있다고 한다. ‘독점’과 담합의 형태로 사적 권력이 등장하여 이것이 자유를 억압하고 소득과 부의 분배의 격차를 심화시켰다고 한다. 주목할 것은 그런 사적 권력의 원인이다.

 

오이켄은 사적 권력의 형성을 법적으로 인정하거나 지원하는 등 정부의 잘못도 컸지만, 정부의 개입이 없었다고 해도 경쟁을 제한하는 독점과 담합이 필연적이라고 한다. 이는 시장경제는 정부의 도움이 없이는 자생적으로 자유경쟁이 확립될 수 없고 그래서 경쟁질서의 확립은 국가의 중요한 과제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그는 정부의 필요한 규제는 엄격히 제한되고 사후적이어야 한다는 점을 결코 잊지 않았다.

 

 

어쨌든 그의 질서자유주의는 별도의 독점금지 정책이 필요하지 않다고 강조하는 고전적 자유주의와 다르다. 이는 독점과 담합의 문제는 지속적인 국가의 시장개입에서 야기된 산물이라고 말하면서 기업의 시장 진입에 법적 장애물이 없으면 사적 권력은 문제 될 게 없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오이켄의 정부관(觀)도 흥미롭다. 그는 ‘강한’ 그리고 ‘제한된’ 정부를 강조한다. 한편으로 정부는 사적 권력의 남용으로부터 자유경쟁을 보호할 과제가 있다. 이익단체의 요구를 물리칠 만큼 정부는 강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 정부는 개인과 기업의 자유를 위협하기 때문에 권력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시장경제 원칙으로 정부행동을 구속해야 한다고 한다. 오이켄의 경제사상은 독일에서 당시 무시되었던 자유와 질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자유주의 경제학의 선구자가 되었다.

 

오이켄은 사회주의는 자유를 박탈하는 그래서 총체적으로 실패한 이념이라고 믿었다. 적자재정, 저금리, 신용확대를 통한 케인스의 완전고용정책은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가격을 왜곡시켜 불황을 몰고 온다고 경고했다.

 

 

나치즘 치하에서도 오이켄은 자신이 재직하고 있었던 프라이부르크 대학 근처의 지하방에서 비밀리에 교수들 및 대학원생들과 함께 법과 경제, 질서 사상과 관련하여 정기적으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 세미나 소식이 암암리에 알려지자 독일 전 지역에서 참석자들이 몰려왔다. 그러나 비밀경찰의 수색과 압수, 감금 등으로 세미나를 지속하지 못했다.

 

사상의 힘

 

오이켄의 사상은 오늘날 독일의 자유주의 경제학의 구심점이 되어 생생히 살아 있다. 그것은 제도적 틀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는 질서정책의 르네상스를 열었다. 오이켄의 사상이 한국에 미친 영향은 각별하다. 한국에서는 과거에 지나친 정부의 개입으로 왜곡된 경쟁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1980년대 초에 도입된 독과점 규제법의 뿌리는 오이켄의 경쟁질서 컨셉이다.

 

 

질서경제학회(Ordo Economics Association)가 1990년대 중반에 설립되었는데 그 설립배경도 오이켄의 질서 사상이다. 다양한 이유로 질서경제학과는 관련이 없는 활동이 많았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과정정책(재량정책)을 의미하는 한국적 경제민주화를 배격하기 위한 학회 차원의 노력처럼 학회를 중심으로 질서 사상을 연구하고 이를 현실에 접목하는 데 주력하고 있는 모습은 매우 바람직하다.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더워드뉴스(THE WORD NEWS) = 민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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