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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국의 경제철학이야기] (2) 진화사상의 개척자 : 데이비드 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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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지식인들이 고민했던 것은 사회의 기초가 되는 도덕과 법이 어떻게 형성되고 지켜지는가의 문제였다. 이 문제에 대해 가장 체계적이고 적실성이 있는 자유주의 철학을 개발한 인물이 영국의 도덕철학자 데이비드 흄(1711~1776)이었다. 그가 주목한 것은 시장경제의 제도적 기초가 되는 정의였다. 그에게 정의란 타인의 재산에 대한 침해, 계약위반 사기나 기만 등, 불의(不義)를 금지하는 규칙들이다. 사법(私法)의 기초가 되는 정의 규칙은 누구나 자유롭게 배우면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이다. 주목할 것은 정의가 어떻게 생겨나는가의 문제다.

 

당시 영국을 지배하고 있었던 신의 창조설을 흄은 반대했다. 그는 철저히 무신론자였다. 교수직에 어울리는 인물이었지만 끝내 교수가 되지 못하고 ‘문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래서였다. 그는 합리주의 사상에도 정면으로 도전했다. 사회의 법과 도덕은 전지전능한 어느 누군가에 의해서 계획, 설계된 것이고 또 그런 사람이 만들어야 합리적이라는 계획사상도 반대했다. 흄은 인간이성에 대한 비관적 태도였다. 정의는 본능에서 생겨난 것도 아니라고 한다.

 

 

도덕은 신의 선물도 이성의 선물도 아닌 진화의 산물

 

그렇다면 정의의 원천은 무엇이란 말인가! 철학적 집필을 16세에 시작했을 정도로 조숙한 흄의 대답은 경험을 중시하는 진화다. 그의 진화사상은 천동설을 지동설로 바꾼 것만큼이나 혁명적 발상이었다. 진화의 간단한 예를 들면 어느 한 사람이 타인의 재산을 탈취하지 않고 그와 교환을 했더니 두 사람 모두가 더욱 편해지는 것을 경험한다. 왜 유익한 것인지도 모르면서 타인들도 교환행위를 모방한다. 그 결과, 의도치 않게 재산존중의 도덕이 형성된다는 것이 흄의 설명이다. 언어 시장, 분업 등도 진화적으로 즉 자생적으로 형성된다는 게 그의 진화론적 주장이다.

 

모든 사람들이 자생적으로 형성된 규칙을 지킨다면 그런 규칙을 강제로 집행할 정부는 불필요하다. 그러나 인간이란 타인의 재산을 침해하거나 약속을 어기는 게 유익하다는 유혹에 빠지기 쉬운 연약한 동물이라는 게 흄의 인간관이다. 따라서 정부는 정의의 시스템을 유지하여 재산과 자유를 보호할 과제가 있다는 것이다. 통치자가 적절히 법을 집행하여 시민사회를 유지한다면 군주든 공화정이든 그 혼합이든 상관이 없다는 게 흄의 헌법적 발상이다. 흄은 진화 사상이라는 새로운 철학적 기초에서 자유주의와 시장경제 사상을 개발하는데 개척자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그는 매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시장경제의 도덕성

 

상업사회는 부도덕하고 물질주의적 성향을 촉진한다는 것이 당시 일반적 견해였다. 그러나 상업사회는 물질적 발전만이 아니라 공정성, 사회성, 공손함, 창의와 인간성과 같은 사회적 덕을 증진한다는 것이 흄의 인식이었다. 상업사회는 인간행복의 정념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노동이라는 도덕심을 북돋아 준다고도 한다. 행복은 인간의 최대 목적인데 예술이 고안되고 과학이 생겨나며 법이 등장하는 것도 그런 목적을 위해서라는 것이 흄의 통찰이다. 노동은 성취감을 촉진하고 개인의 성품과 태도를 정제하여 행복증진에 기여한다는, 창의와 창조를 촉진하고 술주정이나 게으름 등과 같은 파괴적 성향을 억제하는 것이 노동이라는 그의 노동관도 중요하다.

 

 

사람들은 도덕과 사회통합의 위협이라는 이유로 상업사회의 “개인주의정신, 경쟁, 이윤추구를 우려했지만” 흄은 걱정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경제적 번영이야말로 사회적 덕성의 증진에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노동과 지식 그리고 인간성은 서로 얽혀져 있는 것이 상업사회라고 했다. 그는 평등분배에는 관심도 없었다. 국가권력을 증대시키고 과도한 조세부담을 초래한다는 이유에서다. 귀족·봉건사회처럼 극단적인 불평등에 대해서도 그는 일침을 가한다. 부가 소수의 손에 장악되면 그들이 모든 권력을 손에 쥐고 특히 공모하여 조세부담을 빈자에게 전담시켜 결국 빈자들의 노동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고도 했다. 다행스럽게도 상업사회는 가장 극단적인 불평등을 견제하여 공정성을 증진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흄의 탁월한 인식이었다. 상업사회는 보편적 풍요를 불러온다. 국경을 넘어서까지 상업을 확대한 국제무역이야말로 인류 문명의 백미라고 그는 목소릴 높였다. 무역은 상품교환을 넘어서 기술적 지식, 삶의 방식을 배울 소중한 기회를 마련한다는 주장도 빼놓지 않는다.

 

흄의 사상이 후세에 미친 영향

 

시장경제는 어떤 특수계층의 의도한 결과가 아니라 지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한계가 있는 평범한 인간들의 활동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결과라는 게 흄의 핵심사상이다. 그의 사상이 미친 영향은 대단히 크다. 그는 인간이성에 대한 회의(懷疑)를 특징으로 하는 진화 사상을 개발하여 그가 낳은 자유주의 경제학의 거성인 애덤 스미스와 함께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의 전통을 세웠다. 이 계몽주의는 대륙의 오랜 전통이 된 ‘프랑스 계몽주의’와 나란히 사회철학의 양대 산맥을 형성한다.

 

프랑스 계몽주의는 도덕법 등 인간들에게 유익한 사회구조는 인간 이성을 통한 계획의 산물이고 또 계획하여 만들어야 한다는 사상인데 흄은 그런 합리주의 사상은 국가가 개인보다 위에 있다는 것을 전제하는 다양한 형태의 국가주의를 초래한다고 꼬집었다. 그 극단이 사회주의다. 사회가 형성되기 전에 어떤 권리도 존재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자연권 이론도 틀렸다는 흄의 주장도 진지하게 되새겨야 한다.

 

 

다양한 생물들이 제각기 자신의 생명유지에 몰입한다고 해도 어떻게 자연적으로 질서가 가능한가를 설명하는 찰스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이론에 영향을 미친 것도 흄의 진화사상이다. 20세기 위대한 자유주의 경제학자였던 하이에크 사상도 흄의 진화 사상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공공부채가 자원 배분의 왜곡을 초래한다는 흄의 주장은 공공부채는 아무런 해가 없다는 케인스와 루스벨트의 적자지출 주장에 대한 강력한 반박논리였다는 것도 주지할 필요가 있다.

 

흄의 사상은 자유주의와 시장경제가 범세계적으로 확대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했고, 영국과 미국을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세계 최강국으로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우리나라가 시장경제를 받아들여 잘 살게 된 것도 흄의 사상적 영향의 결과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말해도 무방하다.

 

 

(더워드뉴스(THE WORD NEWS) = 민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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