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 무덤은
부활을 논박하는 모든 이론들을
단숨에 파괴해 버리는
단단한 바위와도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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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스트로벨 (Lee Strobel)
"예수는 역사다(The Case for Christ) "
총 2명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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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독정부의 길을 선택한 이승만의 공로는 크다. 당시는 그것이 잘된 일인지 못된 일인지 알기 어려웠다. 그런데 역사는 이승만의 판단이 옳았음을 가르쳐준다. 문창극의 역사 읽기 : 그들이 꿈꾸던 나라 ” (더워드뉴스(THE WORD NEWS)
“ 교수들은 자본주의의 이 모든 단점을 해결하기 위해, 모든 사람이 더 평등해지기 위해, 사유재산을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공산주의이다. 공산주의 이론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사유재산 철폐 라고 말한 것은 칼 마르크스다(『공산당선언』) 세뇌 : 미국대학은 어떻게 좌경화 되고 있는가 벤 샤피로 ” 더워드뉴스(THE WORD NEWS)
영국 출신 정치경제학자 겸 사회철학자였던 존 스튜어트 밀(1806~1873)을, 애덤 스미스를 비롯한 고전적 자유주의를 완성한 인물로 취급한다. 이는 전적으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19세기 중반 자유무역을 통해서 자유주의가 꽃을 피우던 시기에 반(反)시장적 사회주의의 여론을 주도했다. 자유의 물결로 산업분야에 혁명적인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그런 산업화를 이끈 자본주의는 기대한 만큼 경제적 성과가 없다'는 진단과 '빈곤은 숙명'이라는 등, 인류의 미래에 대해서도 '음울한' 예측만이 난무했다. 3살 때부터 아버지의 혹독한 조기교육을 통해 성장했던 밀은 선배들의 자유주의적 정치경제학은 틀린 이론이라고 선언하면서 분배를 중시하는 좌측을 가리키며, 이것이 인류의 번영을 위한 길이라고 갈파했다. 성장보다 분배의 중요성을 강조 한창 친구들을 사귈 나이에 아버지의 가혹한 채찍으로 집에서 혼자 공부에 전념했던 불행한 밀은 당시 시장의 제일의 덕목으로 여겼던 경제성장으로는 노동계급의 비극을 해결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분배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러나 밀은 나눌 파이를 줄이지 않고는 분배하기 어렵다는 세간의 이론적 저항에 부딪친다. 그러나 그는 자연의
파이프스는 유명한 저서 《소유와 자유》(한글판 15쪽)에서 소유를 "한 명이나 여러 사람의 소유주가 배타적으로 자산을 이용하고 매매나 다른 방법으로 처분할 수 있는, 공식적으로 정부 당국으로부터 인정받은 권리"로 정의한다. 소유(재산)라는 말에 권리를 붙여 사용하고 있다. 어느 한 사람이 권리가 있으면 반드시 이 권리를 충족시킬 의무를 지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소유(재산)에 권리라는 말을 붙이는 것이 논리적으로 정당한 경우가 있다. 이게 쌍방계약에 의해서 권리가 창출되는 경우다. 예를 들면 A가 1년 후 갚기로 하고 B로부터 이자 10%로 돈 100만원을 빌렸다. 그러면 B는 A에 대하여 이자와 원금을 받을 권리가 있다. 그리고 A는 B에게 빚을 갚을 의무가 있다. 계약이 권리를 창설한다. 1년 후에 B가 받게 될 110만원은 B의 소유(재산)권이다. 1년 후 A가 110만원을 갚았다. 이로써 A와 B 사이에 계약관계 즉 권리-의무관계는 종결된다. B가 받은 110만원은 B의 소유권(재산권)이 아니라 그의 소유(재산)이다. 이제 B에게 그 소유는 자유롭다. 즉 그는 재산을 "이용하고 매매나 다른 방법으로 처분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한마디로 소유는 자
사무엘하 6장 9 - 14절 (개역한글) 9 다윗이 그날에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궤가 어찌 내게로 오리요 하고 10 다윗이 여호와의 궤를 옮겨 다윗 성 자기에게로 메어 가기를 즐겨하지 아니하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 간지라 11 여호와의 궤가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을 있었는데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의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 12 어떤 사람이 다윗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 한지라 다윗이 가서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올라갈 새 13 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가매 다윗이 소와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리고 14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그 때에 다윗이 베 에봇을 입었더라 처음부터 언약궤는 메고 가는 것이었다. 2절을 보자. 2 다윗이 일어나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바알레유다로 가서 거기서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 하니 하나님의 언약궤를 제사장들이 어깨에 메고 왔어야 한다. 그것이 기본이고 원칙이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
독일의 도덕철학자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 ~ 1804)는 경제에 관심이 없는 은둔한 철학자로 알려졌지만 그렇지 않았다. 거의 매주 오후에 친구들을 만났는데 이들은 대부분 사업가, 상인, 은행가였다는 게 역사가들의 증언이다. 그들과의 화제는 주로 경제와 정치였다는 것이다. 그런 대화를 통해 칸트의 경제마인드가 형성되었고 시장이 돌아가는 모습도 알게 되었다. 그는 친구들의 회사에 투자해서 많은 돈도 벌었고 유산으로 상당한 재산도 남겼다. 칸트는 영국의 유명한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 데이비드 흄 등 스코틀랜드 계몽 철학자들의 문헌을 두루 섭렵하여 기업과 시장에 박식했고 실제로 그는 대학에서 경제학적 주제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애덤 스미스는 시장경제를 법학적으로 정당화했다면, 칸트는 윤리에서 자본주의의 정당성을 찾았다. 그의 윤리학의 핵심주제는 정언명령이다. 자본주의의 윤리는 정언명령 아버지가 말안장 수리공인 가정에서 자라난 칸트의 도덕철학적 출발점은 세상이 돌아가는 법칙은 선험적인 정신의 산물이라는 ‘합리주의 인식론’이다. 그는 이런 인식론을 도덕철학에도 적용하여, 어느 한 행동이 도덕적으로 옳은가 그른가를 판단하는 도덕적 기준도 이미
사무엘하 6장 4 - 8절 (개역한글) 4 그들이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하나님의 궤를 싣고 나올 때에 아효는 궤 앞에서 가고 5 다윗과 이스라엘 온 족속은 잣나무로 만든 여러 가지 악기와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양금과 제금으로 여호와 앞에서 연주하더라 6 그들이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7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그를 그 곳에서 치시니 그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8 여호와께서 웃사를 치시므로 다윗이 분하여 그 곳을 베레스웃사라 부르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이르니라 날뛰는 소로 인해 웃사가 죽다. 다윗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가져오기 위해 삼만 명을 선별했다. 산 위에 있던 아비나답의 집에서 언약궤를 가져오려고 다윗과 이스라엘 온 족속은 잣나무로 만든 각종 악기를 사용하여 여호와 앞에서 연주하였고,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는 소가 끄는 새 수레를 몰았다.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사건이 일어났다. 예루살렘 가까운 동네의 나곤의 타작 마당에서 소가 날뛴 것이다. 거의 다 왔는데 말이다. 웃사
사무엘하 6장 1 - 8절 (개역한글) 1 다윗이 이스라엘에서 뽑은 무리 삼만 명을 다시 모으고 2 다윗이 일어나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바알레유다로 가서 거기서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 하니 그 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라 3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그 새 수레를 모니라 4 그들이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하나님의 궤를 싣고 나올 때에 아효는 궤 앞에서 가고 5 다윗과 이스라엘 온 족속은 잣나무로 만든 여러 가지 악기와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양금과 제금으로 여호와 앞에서 연주하더라 6 그들이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7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그를 그 곳에서 치시니 그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8 여호와께서 웃사를 치시므로 다윗이 분하여 그 곳을 베레스웃사라 부르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이르니라 다윗은 헤브론에서 왕이 된 후 블레셋으로부터 시온산성을 빼앗았으며,
자유는 모든 가능한 행동을 해도 된다는 의미의 방종이 아니다. 자유는 폭력, 강제의 금지, 예의범절, 직업윤리, 종교규칙, 소유존중, 약속이행 등 다양한 규칙들과 결부되어 있다. 보편, 추상적이고 특정한 행동을 금지하는 성격을 가진 행동규칙, 즉 정의의 규칙을 통해서 어느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개인의 ‘자유영역’이 형성된다. 불의(不義)의 행동을 막는 정의규칙의 테두리 내에서 인간들은 자유롭게 재화를 생산, 교환, 소비한다. 따라서 자유란 우리가 자유롭게 수행할 행동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유 대신에 ‘자유권’이라는 용어를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사용한다. 예를 들면 헌법에서 종교, 언론, 출판, 표현의 자유 등을 기본권으로서 자유권으로 다루고 있다. 경영의 자유 대신에 ‘경영권’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노동자의 경영참여제도는 자본가의 경영권을 침해하는 제도라는 이유에서 흔히 사람들은 반대한다. 존 롤스에게 정의로운 사회란 개인들이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평등한 ‘자유권’을 가진 사회다. 주목할 것은 자유라는 말에 권리라는 말을 붙임으로써 야기되는 문제는 무엇인가다. 우리에게 소비하는 행동 또는 신앙을 향유하는 것, 기업이 인사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자유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