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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도올 김용옥 비판 : 부족한 지혜와 혹세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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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이 매우 중요했던 시대는 19~20세기까지. 21세기에는 '지혜'를 갖추는 것이 중요해져
지혜를 인정하면 그의 평소 사상, 태도와는 전혀 다른 해답이 도출돼
도올 김용옥이 지식이 아닌 지혜를 뽐내길

 

* 연세대학교 모기룡 박사의 기고문입니다. 모 박사는 건국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화정보콘텐츠학 석사를 받았으며 연세대학교에서 인지과학 박사를 취득했습니다. 한국연구재단이 지원하는 신진연구자에 선정되었으며, 현재 연세대 인지과학연구소에 재직중입니다. 저서로 《착한 사람들이 이긴다》, 《왜 일류의 기업들은 인문학에 주목하는가》, 《잃어버린 창의성을 찾아서》, 《불과 물의 지혜》(대한출판문화협회 선정 ‘2018 올해의 청소년 교양도서’), 《나는 왜 지배받는가》, 《'나'라는 브랜드로 살아남기》, 《내가 선택하는 자유》등이 있습니다.

 

 

도올 김용옥은 지난 이십여 년간 동양철학으로 한국에서 매우 유명한 학자다. 특히 진보진영에 속하면서 그 안에서도 영향력이 매우 큰 사람이다. 2000년 즈음 EBS에서 방영한 그의 노자 강의가 히트를 치면서 그의 명성이 크게 높아진 관계로, 그에게 있어서 노자철학은 매우 커다란 자산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최근에 《노자가 옳았다》라는 또 하나의 노자 관련 서적을 출간했다. 그리고 노자철학에 대한 지지와 홍보를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그가 노자철학과 동양철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설명하고 있는지, 평소 그의 사상과 어떤 괴리가 있는지에 대해 비판하고 싶은 심정이다. (이는 익명 비판이 아니라 내 이름 모기룡을 내놓고 하는 비판이다)

 

김용옥은 다양한 외국어 실력과 철학에 관해 많은 지식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지식이라도 그것을 꿰어서 하나의 보물로 만드는 '지혜'가 있는가는 별개이다. 요즘 지식은 인터넷 검색을 하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외국어를 잘하는 것도 지식이긴 하지만 지혜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리고 철학의 가치는 지식이라기보다는 지혜이다. 만약 파편적인 지식들을 잘못 엮거나 해석하면 잘못된 지혜가 되고, 어떤 의도인가에 따라 도덕적인 문제도 발생한다.

 

나는 노자와 도가철학(노자, 장자, 양주의 사상)을 매우 좋아한다. 그에 대한 지지와 호감의 측면에서 김용옥에 못지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전반적인 동양철학도 좋아한다. 사람들, 학자들에 따라 서양철학과 서양문명을 선호하고 동양철학을 무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을 둘 다 좋아하고, 그 저변에 흐르는 지혜는 현대 모든 인류에게 필요한 좋은 지혜가 된다고 본다. 나는 얼마 전 (서양뿐 아니라) 동양철학과 정신에서 현재 우리 사회의 문제를 푸는 데 필요한 지혜가 있음을 알리는 책 《내가 선택하는 자유》를 출간했다. 동양철학에서도 특히 가장 장점이 많은 것은 도가철학이었다. 그런데 김용옥은 노자의 사상을 나와 전혀 다르게 그 함의를 해석하면서 좌파사회주의 정치이념에 유리하도록 홍보하고 있다(그가 그쪽 정치권을 지지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것은 잘못된 해석이고 혹세무민이다.

 

노자 사상의 핵심은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 할 수 있고 특히 '무(無)' 사상은 동양철학과 사상 전반에서 '서양철학에 비교해서' 특징적으로 담겨있다. 다만 굳이 따지면 유불선 중에 무 사상이 가장 강조되는 것은 도가–불가–유가 순이다(유불선의 반대). 이런 점에 있어서 내가 동양철학을 좋아하고, 특히 도가철학을 좋아한다.

 

서양철학에 비해 동양철학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김용옥이라면 이러한 점에 대해 잘 알고 강조해야 할 텐데, 그는 과연 동양철학 전반에 흐르는 무(無) 사상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나 해석을 한 것일까? 아니면 알면서도 숨기거나 왜곡하고 있는 것일까? 만약 파편적 지식밖에 없고 지혜가 깊지 않다면 무라는 사상이 존재하고 그 함의가 무엇인지를 알기도 어려울 것이다.

 

 

아무튼 '무'와 '무위', '자연'을 이해하는 것은 노자 사상을 이해하는 핵심이 된다. '무'는 '유'의 반대이지만, '유무상생(有無相生)'으로 (태극도처럼) 유와 무는 서로 상생, 상보의 관계에 있다. 이는 동양사상과 도가철학의 특별한 점이다. 더구나 노자는 유가 무에서 생성된다고 봄으로써, 무의 중요성을 더욱 부각시킨다. 반면 서양적 사고, 서양철학은 언어·논리적 사고(로고스)를 중시함으로써, 파르메니데스의 말처럼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며, '유'의 '보이는 것'을 중시한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Seeing is believing)"라는 서양의 속담은 보이지 않는 무의 속성의 가치를 무시하는 역할을 해왔다. 다만 명시적이고 분명한 것을 중시여기는 자연과학의 발전에 도움이 되었다.

 

'무위'를 논하기 전에 먼저 노자의 '자연(自然)'에 대해 살펴보자. 그것은 '스스로 그러하다'는 뜻으로, 단지 미개발된 자연환경의 의미와는 다르다(방송을 보니 이건 김용옥도 알고 있었다). 노자가 의도한 자연의 뜻은 마치 무에서 유가 스스로 태어나듯이, 타자의 통제(control)나 간섭에 의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성되고 활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것은 자율적으로 생성됨, 즉 '자율성'과 관련이 크다.

 

'무위(無爲)'의 뜻도 이와 연결된다. 그것은 '인위적으로 통제하려 하지 마라'라는 뜻이다. 그래서 '무위자연'은 '그대로 자율적으로 만들어지도록 놔두고, 인위적으로 (외부에서) 통제하려 하지 마라'라는 뜻이 된다. 이것이 노자 철학의 핵심 사상이다. 그로 인해 노자는 국가기관과 정치인이 백성이 하고자하는 바를 억누르지 말 것, 즉 통제하지 말 것을 주장했다.(도덕경 제72장 참조)

 

그런데 역시나 김용옥은 얼마전 <김어준의 다스뵈이다> 136회에 출연해서 노자철학을 소개하면서 이상한 쪽으로 함의를 몰고 간다. 그는 노자 사상을 통해 자본주의를 비판할 수 있다는 식의 말을 하며, '공동체주의'가 좋다는 말을 했다. 공동체주의의 가치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다루겠지만, 특히 노자를 비롯한 도가 사상은 공동체주의와 거리가 멀고 '자유주의', '개인주의'에 훨씬 가깝다. 노자는 국가가 백성을 통제하는 것을 매우 싫어하고 자율성을 긍정했으므로 자유주의라 할 수 있다. 물론 노자 뿐 아니라 장자와 양주도 마찬가지다. 특히 '개인의 자유', '개인의 자율성'과 관련이 크다. '개인'이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서양식의 단절되고 외로운 개인 같은 의미를 떠올릴 필요가 없다. 단지 각자 자율성을 가진 개체라고 생각하면 된다. 노자는 "자기 자신을 천하같이 아끼는 사람에게 천하를 맡길 수 있다"라고 말하면서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를 권했다.(도덕경 제13장 참조)

 

공동체주의는 그나마 유가(유교)에서 강한 편인데 맹자는 노자 이후에 도가철학에서 유명한 양주의 심각한 개인주의를 비판하였다. 맹자는 "양주는 위아주의(爲我主意)를 취하여 털 한 올을 뽑아 천하가 이롭게 된다 해도 하지 않는다"라고 일갈했다. 그런데 이 말대로라면 개인주의라기보다는 이기주의로 보이고 맹자가 과장해서 비판했을 것이다.

 

이렇게 실은 자유주의와 개인주의를 담고 있는 노자와 도가철학을 지지하면서 그것을 자본주의 비판과 공동체주의 옹호라는 왜곡된 함의로 선동하는 것은 잘못이다. 자본주의의 반대인 사회주의는 국가 또는 당의 통제와 계획의 증가가 "필수"이다. 자유시장경제와 (개인의)자유주의는 김용옥이 좋아하지 않는 이념일 것이다. 그가 좋아하는 좌파사회주의 이념은 국가 또는 당이 사람들의 자율성과 자유를 억압하고, 계획하고, 통제력을 크게 키우는 특징을 갖는다. 이것은 노자와 도가사상에 의하면 매우 부적절한 것이다. 더구나 사회주의 사상의 근본은 인위적으로 만드는 궁극의 유토피아를 꿈꾸는데(이것에 반대하면 ‘반동’이 된다), 무위자연과는 정반대이다. 그것은 인간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서양식 휴머니즘의 발현이다. 나는 《내가 선택하는 자유》에서 사회주의 사상이 얼마나 '서양적인 것'인지에 대해 설명했다.

 

나는 공동체주의도 좋아한다. 다만 집단주의, 전체주의가 아니라 다수나 공동체의 이익을 위하고 개인과도 조화되는 공동체주의이다. 이것은 동양철학의 '상생' 개념으로도 설명된다. 서양에서는 상생 개념이 부족해서 한 개인이 이익을 가지면 타자의 이익이 줄어드는 것 같은 관념이 생긴다(특히 유물론을 가정하면 더 그렇다). 그것은 단지 이기주의일 뿐이다. '호혜성'과 같은 것이 상생인데, 이것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의 비유에서도 나타난다.

 

 

흔히 서양에 비해 동양이 공동체주의가 강하다고 하는데, 나는 공동체주의도 좋아하므로(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가 함께할 수 있다고 보므로) 그러한 동양적인 면도 좋아한다. 다만 특히 공동체주의가 강해보이는 이유는 과거 유교의 권위주의로 인한 집단주의적 측면이 있다. 그런데 사실 그 부분은 유교의 장점을 뺀 부작용 부분(지배층의 권력 강화에 악용)이 드러난 것이며, 도가와 불교는 공동체주의가 적다. 불교는 수많은 종교들 중에서도 '개인주의적'이다. 타인의 자유에 간섭하지 않으며, 다른 종교와도 잘 싸우지 않으며,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강조하며, 모든 것은 자기 마음의 문제라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가 핵심인 사상이다. 궁극적 목표인 '해탈'이 자유를 뜻한다는 분석도 많다.

 

동양철학, 동양의 정신에서는 개인의 자유를 긍정하는 정신을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서양식의 관계가 끊어지고 분리된 개인과 같은 '허구적' 개인 관념이 아니다(그것은 수학적, 원자적 개인이다). 다만 자연스러운 개인일 뿐이다. 그것은 공동체와 분리되지 않는다. 리처드 도킨스(《확장된 표현형》참조) 등 많은 현대 서양 과학자들과 사상가들은 분리 독립된 개인이 허구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특히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동양 사상은 그 왜곡된 서양의 개인 개념과 외로움의 부작용을 치유할 수 있는 대안이다. 그러면서 사회주의가 아닌 ‘자유로운 사회’를 충분히 지향할 수 있다.

 

한국 사회주의 계열의 주류인 NL(National Liberation,민족해방)계열은 서양에 대비되는 동양의 정신, 그러한 우리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강조하면서 사회주의를 주장한다. 동양과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긍정은 반미친중, 그리고 주체성 강조는 주체사상 긍정(반미 주사파)으로 나타난다. 김용옥의 평소 주장은 특히 전자, 반미친중에 기울어져있다(그는 미국을 비판하고 중국 현 정권을 옹호해왔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과연 '중화문명'과 '친중'이 우리의 '주체성'과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 것일까? 주체성이란 김일성이 애초에 주장했던 것처럼, 사대주의를 물리치는 자주 독립, 우리식대로의 노선이다. 김용옥은 주체성은 버린 것인지에 대해 묻고 싶다. 친중과 중화는 과거부터의 전통이라는 이유로 정체성의 일부는 될 수 있어도, 주체성과는 모순된다. 사실 이 문제는 NL에 구조적으로 잠재된 문제다.

 

나는 우리가 주체성을 가져야 한다고 보며, 나는 '민족주의'에도 호의적이다. 민족주의는 인종·종족주의의 뜻이 아니라 민족자결과 상생의 뜻이 담긴 열린 민족주의, '자유주의적 민족주의'도 가능하다(학계에도 이런 용어가 있다). 우리가 주체적으로 이념과 체제를 택하는 길은 우리의 정체성인 동양에서 좋은 부분을 찾고, 우리 민족 고유 사상에서도 좋은 부분을 찾고, 서양 사상에서도 그와 모순되지 않는 좋은 부분을 찾아 합리적,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참고로 민족 고유의 사상에서 가장 유명한 '홍익인간'(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은 서양식 휴머니즘의 부작용을 치유하고, 우리의 핵심으로 삼고 수출도 할 만한 좋은 것이다. 서양식 휴머니즘은 그동안 단절된 개인과 인간(능력)만능주의로 인해 종종 전체주의가 되는 부작용이 생겨왔다(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 참조). 인간의 과도한 오만을 치유하고 인류의 결과적 행복을 위해서는 홍익인간으로 대체됨이 적당하다.

 

사회주의 전략가 안토니오 그람시는 투표로 결정하는 민주주의체제에서는 폭력혁명이 어려우므로, 시민사회의 각종 진지들을 점령해서 시민의 생각을 장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기동전'에서 벗어나 '진지전'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사회 진지의 한 예로 그는 교육, 문화, 사법, 언론 등과 함께 '지식인'을 들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정체성을 강조(NL성향)하는 전략의 장점을 이용하면서 사람들을 좌파사회주의 쪽으로 유도하는 ‘지식인’이 나타날 법 할 것이다. 그러한 지식인(들)이 우리사회에서 누구인지는 여러분들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도올 김용옥은 많은 지식을 자랑하지만 지식은 이제 그만 뽐내고 지혜를 뽐내기를 바란다. 다시 말해, 파편적인 지식들이나 외국어를 많이 안다고 자랑할게 아니라, 그걸 명분으로 혹세무민하지 말고 진리를 제대로 탐구하고 정확히 또는 솔직히 말하길 바란다. 지식이 매우 중요했던 시대는 19~20세기까지였다. 21세기에는 컴퓨터가 못하는 일과 컴퓨터에 담겨있지 않은 지식, 즉 '지혜'를 갖추는 것이 중요해졌다. 그의 최근 책 제목처럼 ‘노자가 옳았다.’ 이를 인정하면 할수록 그의 평소 사상, 태도와는 전혀 다른 해답이 도출된다.

 

 

* 외부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더워드뉴스(THE WORD NEWS) = 모기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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