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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주제넘은 훈장 노릇 – 진중권씨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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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만학당 주익종 이사의 기고문입니다. 주익종 이사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와 박사 취득 후 하버드대학교 방문연구원을 거쳐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을 역임했습니다. 저서로 『대군의 척후』와 『반일 종족주의』(공저) 등이 있습니다.

 

 

 

비겁하거나 악하거나 – 한국 지식사회의 본색


작년 6월 말 『반일 종족주의』가 출간된 후 한국의 대학과 언론 등 지식사회가 보인 반응은 한마디로 “비겁하거나 악하거나”였다. 이영훈 교수 등 6인의 필자가 집권 좌익과 그를 뒷받침하는 한국사학계의 날조된 반일사관을 비판한 데 대해, 대학과 언론에 몸담은 소위 지식인의 대다수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며, 일부가 홍위병처럼 거칠게 비난하고 나섰다. 침묵의 이유로는 살벌한 역사전쟁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서도 있고(비겁하거나), 한국사 연구자들처럼 굳이 논평해서 책이 알려지게 하고 싶지 않아서 였다(악하거나). 대신 역사홍위병들이 ‘구역질나는 책’이라거나(전 법무부 장관 조국), 부왜노(附倭奴) 혹은 토착왜구를 역사부정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나섰다(동국대 교수 황태연 등). 이 책은 한국 사회에서 진지하게 검토되지 않은 채, 저자들을 상대로 한 고소 고발이 줄을 이었을 뿐이다.

 

 

뒤늦은 관심은 고맙지만...


그것으로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집권 좌익 및 그 동조세력은 역사부정죄를 신설하겠다고 나섰다. 관련 법안이 국회에 여러 건 발의되었다. 이런 상태에서 소설가 조정래는 지난 10월 12일 작가 등단 50주년 기념 기자회견에서 다시금 이영훈 교수를 비난하고 처벌법 제정 운동을 벌이겠다고 했다. “일본에 유학하면 다 친일파”라는 그의 발언은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러자 2019년 조국 사태 이래 집권 좌익을 비판하며 당대의 논객으로 등장한 진중권이 뒤늦게 이영훈과 조정래 간의 논란에 끼어들었다.


10월 21일자 『중앙일보』에 실은 기고문에서 진씨는 이영훈 교수와 소설과 조정래 둘 다 틀렸다고 훈수를 두었다. “이영훈은 이승만을 빙의했고, 조정래는 아직도 지리산 해방 투쟁”을 하고 있다면서 둘 다 70여년 전의 과거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착란상태에 있다고 했다. 그는 조정래가 현 집권좌파세력과 같이 친일 미청산에 집착한 나머지, 이미 죽은 일제 때 친일파를 부관참시하는 외에 그와 별개의 오늘날의 150~160만의 친일파(?)를 척결해야 한다는 광기를 보였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진중권은 이영훈 교수에 대해선, 이미 건국이 된 줄도 모르고 70여년 전 이승만처럼 건국을 하려는 망상에 사로잡힌 인물로 희화화했다. 이 두 사람 때문에 대한민국이 ‘해방전후사’로 되돌아갔다고 했다.


베스트셀러 역사소설 작가로서 부와 명예를 한 몸에 누리는 조정래의 정신세계가 아직도 지리산 산중의 빨치산 은거지에서 헤매고 있다는 것은 비판자들 사이에서 잘 알려져 있다. 또 조정래가 새로 반민특위를 만들어 현재의 150~160만 ‘토착왜구’를 척결하자고 하는 건 광기에 다름 아니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역사 해석이 다르면 감옥에 보내겠다고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진중권이 이영훈 교수를 비판한 데는 동의할 수 없다. 역사 문외한이 최고 전문 역사가의 연구를 함부로 재단한 결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진중권이 정치시사와 관련해 날리는 촌철살인의 코멘트는 인정할 만하지만,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그의 이해는 얄팍하기 그지없다.

 

 

식민지기 역사에 대한 무지


지난 삼십 여년간 한국 근현대사 분야에선 수많은 연구성과가 나왔다. 역사학과 소속의 연구자들 외에도 경제학, 정치학, 사회학, 법학, 국문학 등의 여러 분야에서 많은 연구가 축적되었다. 이 방대한 연구들에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를 진중권이 제대로 알 리가 없다. 그는 그 중에서 식민지근대화론, 혹은 이영훈 교수의 연구란 이럴 것이라고 대충 짐작하곤 그걸 물어뜯었을 뿐이다. 문제는 그의 짐작이 엉터리이고 따라서 거기서 출발한 그의 주장도 마찬가지라는 데 있다.


진씨의 짐작과 달리, 식민지근대화는 단순히 경제성장을 가리키지 않는다. 스탈린식 공산주의체제에서도 한동안 경제성장이 가능했기에, 단순히 경제성장이 있었다고 해서 그것을 식민지근대화라 부르진 않는다. 식민지근대화의 핵심은 사유재산권제도와 자유시장경제 제도의 도입이다. 일제의 지배와 더불어 근대 민법과 형법이 도입됨으로써 개인의 인격권과 재산권이 보장되고, 죄형법정주의와 증거주의 등이 사법 원칙으로 자리잡았다. 또 통일적 도량형제도, 통화관리제도, 예결산 재정제도가 시행되었으며, 토지조사사업이 실시되었다. 이런 제도 개혁과 더불어 조선과 일본간 시장이 통합됨으로써, 근로와 투자가 유발되어 산업개발과 경제성장이 이루어졌다.


즉, 식민지근대화의 핵심은 제도개혁으로 사람들의 유인체제(incentive system)가 바뀌어 사람들이 근로와 저축, 투자를 하게 된 것이다. 일찍이 비숍 여사(Isabella Bird Bishop)가 조선여행기에서 “양반 관리들이 다 빼앗아 가는데 저축을 왜 하겠느냐?”는 조선 백성의 탄식을 인용한 바 있었다. 자유시장도, 사유재산권도, 계약 자유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조선은 명백히 근대화에 실패한 것이다.


진씨는 일제하의 경제성장을 조선이 자주적으로 근대화 했을 경우의 경제성장과 비교해서 평가해야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니 이영훈 교수 등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이 곧바로 조선은 근대화의 능력이 없었다고 결론지었다고 하였다. 이것 역시 엉터리 이해다. 이영훈 교수 등 경제사가들은 조선 왕조에서는 국왕 이하 양반 관료의 수탈 때문에 근로와 저축, 투자의 유인이 없었고 그래서 조선에서는 근대화가 진행되지 않았다고 보았을 뿐이다. 단순히 조선왕조에는 없던 경제성장이 일제하에서 생겼다고 해서, 조선의 근대화 능력을 부정한 게 아니다.


더욱이 이영훈 교수 등은 일제가 식민지 조선에서 제도개혁을 하고 경제성장을 이룩했으니 감사하자고 말한 바가 결코 없다. 일본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식민지 지배 목적으로 취한 조치이고 그에 따라 나온 결과인데, 거기에 왜 한국인이 감사해야 하는가. 이영훈 교수 등은 일본이 한 일(제도개혁)을 지적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진중권은 이영훈 교수가 일본에 감사할 줄 모르고 사과를 요구하는 한국인의 민족성, DNA를 문제삼고 있으니, 이게 얼마나 허무맹랑한 일이냐고 조롱하기까지 했다. 이것 역시 남의 주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하는 소리다. 이영훈 교수는 『반일 종족주의』 등에서 조정래를 비판했다. 조정래가 허위(토지조사 과정의 주민 학살, 전시기에 동원된 노무자 학살 등)를 사실인 양 날조해서 일본에 대한 한국인의 증오심을 부추겼기 때문이다. 남이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 사과를 요구해서야 되겠는가? 이영훈 교수는 그걸 지적했을 뿐이다.


진중권이 이영훈 교수의 글을 읽어보지도 않고 지레짐작으로 비판한 것은 또 있다. 진씨는 이영훈 교수가 일본군 위안부의 기원을 조선시대 기생제에서 찾고 해방후에는 그것이 한국군과 미군의 위안부로 이어졌다고 지적해서, 일본군 위안부의 ‘유일성’을 부정하고 일본정부의 책임을 희석시켰다고 했다. 그러나 이영훈 교수는 역사적으로 군 위안부가 광범하게 있었던, 그 가부장적 지배에 대한 성찰이 필요함을 지적했을 뿐이다. 그게 왜 일본 정부의 책임을 희석한(=종군위안부의 ‘유일성’을 부정한) 것인가? 게다가 이영훈이 일본군 위안부의 기원은 조선시대 기생제라고 본 것도 아니다. 이미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일본군 위안부제란 일제하 민간의 공창제가 군대 내에 이식 재편된 것임을 밝혔고, 일본군 위안부의 기원은 일제의 민간 공창제라는 것은 연구자들 사이의 상식이다. 이영훈 교수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관심은 좋지만 공부부터 해야


진중권은 미학자, 미술사 전공자다. 시사논평학이 따로 있는 게 아니므로, 시사 논평이야 말발 좋은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각 학문 분야 논평은 전문가가 아니면 감당하기 어렵다. 내가 서양미술사에 관해 논평할 입장이 아닌 것처럼, 진중권은 역사문제에 감히 논평할 입장이 아니며, 역사전쟁의 당사자를 지도할 입장은 더더욱 아니다. 정 역사문제에 끼어들고 싶으면 공부부터 할 것을 권한다. 수십년간 축적된 연구논문과 저서를 읽고, 쉽지는 않겠지만 사료도 좀 보고, 그래서 섣부른 논평이 아니라 간단한 연구에세이라도 좀 써보고 그 다음에 역사전쟁의 관전평을 쓰길 바란다. 그래서 조선 좌익에서 벗어나길 권한다.

 

 

* 외부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더워드뉴스(THE WORD NEWS) = 주익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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