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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4] "하나님의 결국은 패망이 아니라 승리입니다"

* [20004]는 이만사입니다. '이진수가 만난 사람'이자 '이 세상의 많은 사랑'을 담은 이야기 코너입니다. 더워드뉴스는 세상 속에서 만난 선한 이웃들의 이야기를 [20004]에서 나누고자 합니다. 두 번째 이만사는 초등교육, 인성, 도덕교육 및 기독교 교육과정 분야의 권위자인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초등교육과 김정효 교수입니다. 김 교수는 이화여대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교에서 교육과정/초등교육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2006년부터 2014년까지 8년간 이대부속초등학교의 교장을 역임하고 한국초등교육학회의 회장 및 ACSI (국제기독학교연맹; Association of Christian Schools International) 한국지부 이사 등을 지내며 국제교육개발협력 및 교육선교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주요 저서로는 초등교육이란 무엇인가』(교육과학사), 세계관으로 본 교육』육과학사) 등이 있습니다. (1부에 이어 계속) ◇ 이_ 코로나19로 모든 분야에서 서로 마주하는 것이 어려워졌습니다. 교육에 있어서도 인강, 원격 비대면 수업이 대세를 넘어 자연스러운 모습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초등교육에 있어서는 친구 및 교사와의 물리적 직접적 교감과 소통이 중요할 것 같은데,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필요한 교육은 무엇일까요? ◆ 김_ 코로나19 이전에도 공립학교에서 하루는 학교에 나오지 않는 재택학습 등의 실험학습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재택학습이 이렇게 빠르게 현실로 다가오게 될 줄은 몰랐죠. 지식정보 사회가 되면 집합 수업, 즉 모여서 하는 수업의 의미가 희석됩니다. 집합 교육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될 것입니다. 학교 기능에는 공부하는 기능도 있고, 특별히 초등학교에는 보육의 기능도 있습니다. 맞벌이 부모가 보편화되는 현대에 있어서 학교가 아이들을 돌봐주는 기능이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거든요. 학교의 기능을 크게 '사회성 함양', '지적학습' 그리고 '보육'의 3가지로 볼 때, 코로나로 인한 재택학습으로 인해 학교가 수행해 주지 못 하는 보육(custody)의 기능, 즉 일정 시간동안 아이들을 맡아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대안이 나와야 합니다. 그동안 자연스럽게 생겼던 것들, 이를테면 사회적 관계, 공동체 의식, 나눔과 섬김과 같은 것들을 이제는 더 의도적이고 더 계획적이며 새로운 형태로 일어나도록 새 길들이 찾아져야 할 것이라고 봅니다. ​ 통일한국 시대의 교육을 위해 기독교적 자기희생 사랑 필요 ◇ 이_ 우리의 이웃을 이야기 할 때 가장 가까우면서도 먼 이웃이 북한입니다. 탈북 청소년에 대한 교육은 어찌보면 통일시대의 교육을 미리 대비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양극단의 이질적인 체제를 통합하는 통일한국 시대의 교육은 어때야 할까요? ◆ 김_ 탈북 청소년이 북한에서 장마당 시장경제와 공산주의 사회의 이중구조를 살아가는 것이 몸에 배어있다면, 이질적인 이념과 생활양식 등에 대한 충돌을 감싸 안을 수 있는 방법은 기독교적인 자기희생적 사랑밖에 다른 것이 없다고 봅니다. 문제는 '교회가 어떻게 그러한 삶을 실천하는 모범을 보일 수 있느냐'입니다. 교회는 이미 너무 많은 네트워크와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한국교회가 먼저 일어나야 한다고 봅니다. 사회주의적, 인본주의적 대안을 걷어 내고 더욱 깊은 영성으로 거듭나야 할 것입니다. 삶으로 살아내는 경건과 영적 능력을 통해서만 견고한 진을 파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또한 통일한국을 위한 준비가 될 것입니다. ​​ ◇ 이_ 통일 시대 교육에 있어서 교회의 역할을 강조하셨는데, 교회에서 실제로 많은 대안학교를 준비하는 것 같습니다. 대안학교의 교육은 어떻게 돼야 할까요? ◆ 김_ 대안학교의 학비가 너무 비싸다고 들었어요. '사립학교 보다 비싸고 전혀 지원이 없다면 굳이 대안학교를 갈 필요가 있나?'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다니엘과 모세도 이방 교육을 받았지만 하나님께서 그런 지식을 활용하여 사용하신 측면이 있으니, 일반학교를 다니고 교회와 가정이 잘하면 된다는 말에 동조도 했어요. 그러나 학교 교육을 보완할 수 있는 교육들이 교회에서 생겨나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학교에만 맡겨놓으면 우리의 자녀들은 세상에서 살 때 따로, 교회생활에서 따로 사는 이원론적인 인격이 될 겁니다. 요즘은 10여 년 전과도 또 학교교육이 달라져서 젠더, 이념적으로 견디기 힘든 곳이 되어가기 때문에 교회에서 여력이 되면 대안학교 교육을 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 이_ 대안학교에 보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며 우려하는 부모들은 최근 학교에서 가르치는 성교육에 대해서 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습니다. ◆ 김_ 요즘은 교과서 내용, 특별히 성 문제가 심각합니다. 최근 여가부에서 배포된 책을 성 문제로 거둬드렸다는 기사 보셨죠? 이번에 보니까 스웨덴 책을 번역해서 뿌렸더라고요. 그 내용이 사회 정서적으로 우리와는 너무 안 맞는데, 그런 쪽으로 아이들을 몰아가는 것이죠. 인권이라는 말로 성중독 및 음란과 소수성애자를 부추기는 교육이 되지 않도록 이를 경계해야 합니다. 사회주의 정치체제에서는 소유를 금하는 대신 성을 해방시켜 준다는 말이 있기도 하고 대부분의 막시스트 교육자들이 실제로 다 포스트모던 교육자로 넘어오기도 했습니다. ◇ 이_ 막시스트, 포스트모던 교육을 말씀하셨는데요, 최근 대법원에서도 전교조의 법외노조 판결이 무효라고 판단하고 교육계 전반의 좌경화가 대세인 것으로 보입니다. ​ ◆ 김_ 초등교육과 입시면접을 볼 때 가장 큰 교육 이슈가 뭐냐고 질문하면 열에 아홉이 "평등"이라고 합니다. 소외된 사람 없이 다 같이 배워야 한다고 똑같은 말을 합니다. 그것의 진정한 의미가 무슨 뜻인지도 깊이 생각해보지 못하고 매스컴에서 하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이 문제'라는 소리만 들은 거죠. C.S.루이스는 "평등은 그 안에 인간의 질투를 숨기는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전교조도 처음엔 촌지 문제라든지 아이들을 대하는 비인격적인 문제,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를 신앙적 양심으로 바라본 기독교인들이 많이 참여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전교조의 캐치프레이즈가 '참교육'입니다. 10개 정도 아젠다가 있으면 앞의 5개는 정말 좋았습니다. 뒷부분에 이념적인 것들이 붙으면서 순수한 의미에서 동참했던 기독교인 교사들도 함께 초기의 정신은 사라지고 이념성만 남은 강성노조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문제의식을 갖는 것은 좋은데 너무 쉽게 인본주의적 정의와 하나님의 정의를 혼동해 버렸습니다. 사회주의 정의가 하나님의 정의가 아닌데, '그게 그거'라고 생각해서 거기에 잠식돼 버린 거죠. 정의와 윤리를 무기 삼은 이상주의적 참소와 속임수에 넘어가서 이상한 이념집단을 만드는데 일조한 격이 됐습니다. 모두 다 신학적인 훈련과 기독교 세계관 이해에 대해 교회에서 배우지 못하고, 신앙은 교회에서 배우지만 사회참여이론은 인본주의 학문에서 배우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세계관으로 이념도, 학문도 비평할 수 있는 지성이 훈련돼야 합니다. ◇ 이_ 정치적 색채가 가장 많이 반영되는 교과목이 역사인데요, 현재 학교에서 가르치는 근현대사 역사교육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김_ 우리나라의 정통성을 흐리며 북한에 유리하게 쓰려고 하는 내용이 너무 많이 보입니다. 이전 것을 버리고 또 다른 시각으로 역사를 쓴다고 고상한 단계로 올라간다고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역사교육을 가장 잘한다고 일컫는 프랑스를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왕정을 가장 먼저 무너뜨렸지만 그 시대를 왜곡하진 않았습니다.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서 역사를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 논쟁은 논쟁으로 드러내며 자국의 역사를 세계사적인 맥락에서 바라보도록 하면서 사실에 근접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보다 궁극적으로는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의 성취를 향해 우리나라의 역사도 이끌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과 같은 환란과 혼돈이 꼭 겪어야 하는 일이라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지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교육을 국가 주도로 하면 전체주의로 가, 학부모와 학습자가 결정하고 전문가가 교육하며 정부는 이를 지원해야 ◇ 이_ 교육의 주체는 누구일까요? 내 자식에게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관을 전하기 원하는 부모인가요? 아니면 모든 학생은 국민으로서 국가의 구성원으로 국가가 원하는 대로 가르쳐야 하는 국가인가요? 언뜻 생각하기엔 당연히 부모가 교육에 주체라고 생각되지만, 현재의 교육 시스템은 국가를 주체로 맞춰져 있는 것 같습니다. ​ ◆ 김_ 우리나라 교육은 일제식민지 교육과 국가주도적인 경제개발과정을 거치면서 사회주의적, 집단주의적 경향이 있습니다. 21세기에 맞게 이것을 자율적으로 푸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때 빈부의 격차에 대해서 교육복지가 좀 더 시행될 수 있도록 재정지원을 하고, 모든 교육 내용과 방법은 당사자인 학부모와 학습자가 결정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국가가 관리 수준을 넘어 주도권을 강하게 가지게 되면 정권에 이용되어지거나 전체주의적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코로나가 교육에 대한 국가주도를 가속화 할 것입니다. C.S.루이스는 '인간 폐지(The Abolition of Man)'라는 책에서 미래의 학교가 인간을 폐지하게 될 것이라고 예견했습니다. 국가가 교육에 대해 거대한 계획자와 조작자로서 역할함으로써 관용과 사회통합 그리고 복지 등의 명목으로 자유를 제한하여 오히려 학교가 인간을 인간답게 하지 못하고, 인간을 폐지하게 할 것이라는 냉소적인 이야기를 했습니다. 참된 교육이 필요한 때입니다. ​ 교육은 교육부가 정할 것이 아니라 교육전문가에게 맡겨야 합니다. 또 학자에게는 학자적 양심이 필요합니다. 학자가 교육부의 시녀처럼 되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선택할 수 있는 자율권을 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대안학교, 사립학교, 공립학교 내의 대안 프로그램 등에 교육자원을 다양하게 지원하여 양질의 교육을 많이 진행하여야 합니다. ​​ 교육복지를 신자유주의같이 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교육복지의 예산은, 복지학교를 지정하고 학교에 복지사를 내보내서 학교를 통해서 받도록 합니다. 현재의 교육복지는 정부가 지정학교에 재정을 지원하는 방식인데, 그게 아니라 개인에게 줘야 합니다. 외국의 복지 관련 자료에서도 '돈을 학교에 주면 학교는 국가에서 하라는 대로 한다. 그래서 그 돈을 학교에 주지 말고, 개인에게 줘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개인이 직접 보조금을 받아야 교육의 선택지가 많아지고, 학교는 국가가 아닌 학부모 눈치를 보게 됩니다. 이를 위해 '복지 예산을 집행할 때 어떻게 집행하는 것이 좋은지'와 관련된 연구가 나와야 하는데 별로 없습니다. 국민에게 자율권을 주고 선택권을 줘도 '나도 지금 힘든데 무슨…'이라면서 제대로 된 선택을 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학부모들의 자녀의 성공에 대한 가치가 점차 바뀌면서 해결해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기독인 학부모가 바뀌면 학생도 바뀌고 사회도 바뀌겠죠. ​ 하나님의 결국은 패망이 아니라 승리입니다. ◇ 이_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김_ 이화여대에 사회공헌교수회가 있는데 교수들의 사회봉사를 통해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기독교 신앙과 학문을 통합하려는 노력을 통해 이화의 설립 정신인 기독교 정신을 높이는 일에 힘쓰고 있습니다. 오는 12월에 요즘 기독대학이 직면한 정치와 젠더 이슈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해 세미나를 개최합니다. 지금은 기독인들이 빛과 소금이 되도록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미혹의 영과 싸우고 진리를 선포하며 저항하여야 할 때라고 여겨집니다. 하나님의 결국은 패망이 아니라 승리입니다. (더워드뉴스(THE WORD NEWS) = 다니엘설 기자)